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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사전/황금전설: 성인 이야기

[성인 비탈리스(Vitalis)] 축일: 4월 28일 / 신분: 군인, 순교자 / 활동지역: 밀라노(Milano) / 활동연도 +1/2세기경?

by شيطان؛ جِنّ؛ عِفريت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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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의 부유한 시민이자 군인이었던 성 비탈리스는 어느 날 집정관과 함께 라벤나(Ravenna)에 갔다가 의사이던 성 우르시키누스(Ursicinus, 6월 19일)가 모진 고문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다소 마음이 흔들렸을 때 그가 꿋꿋하도록 격려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정중히 매장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동 때문에 집정관은 성 비탈리스 역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해서 혹독한 고문을 가한 뒤 구덩이 산 채로 묻는 생매장형에 처했다. 순교 시기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 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재위 161~180년) 때로 추정된다. 그가 순교한 곳으로 알려진 곳에 건립되어 547년 그에게 봉헌된 라벤나의 성 비탈리스 대성당은 비잔틴 미술의 걸작품, 특히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그는 라벤나 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비탈리스의 아내이자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이상 6월 19일)의 어머니인 성녀 발레리아(Valeria)는 밀라노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 세례를 받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창기 인물이다. 그녀는 교황의 명을 받은 그 지역 사제와 함께 남녀 10명으로 구성되어 원형극장이나 다른 곳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하는 사명을 수행하다가 체포되어 우상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거부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라벤나에서 순교한 남편의 행적에 대해 전해 듣고 자신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교도 신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모진 매를 맞고 밀라노에서 장렬히 순교했다고 한다. [출처: 가톨릭 굿뉴스]

 

           

 

일대기

 

전설에 따르면 비탈리스는 밀라노의 부유한 시민이었으며 아마도 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성인은 밀라노 출신인 성녀 발레리아와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전설적인)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프로타시우스(Protasius)의 부모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비탈리스는 밀라노에서 라벤나까지 파울리누스 판사와 동행한 장교였습니다. 그는 라벤나의 우르시키누스(Ursicinus of Ravenna)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처형을 당하도록 독려했으며, 처형당한 우르시키누스를 명예롭게 매장했습니다. 이 일로 비탈리스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파울리누스는 비탈리스를 고문하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돌과 흙으로 덮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순교한 날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네로 황제의 박해 희생자였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 박해의 희생자라고 합니다. 그는 라벤나에서 순교했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모든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언급된 등장인물에서 밀라노와 라벤나에서 존경받는 같은 이름의 다른 순교자이고, 부분적으로 각색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경

 

비탈리스는 라벤나 시의 주요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성 비탈리스의 축일은 4월 28일입니다. 아시시, 이탈리아 로마, 달마티아(현재 크로아티아)의 자데라(현재 자다르) 등에 성 비탈리스를 기리기 위한 교회가 세워져 있지만, 그의 이름을 딴 가장 유명한 교회는 라벤나에 있는 팔각형의 산 비탈레 대성당입니다. 비잔틴 예술의 걸작으로 그가 순교한 장소에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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