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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없는 사전/황금전설: 성인 이야기

[성인 발렌티노 (Valentine), 발렌타인, 발렌티누스] 축일: 2월 14일 / 신분: 순교자 / 활동지역: 로마(Roma) / 활동연도: +269년

by شيطان؛ جِنّ؛ عِفريت 2023.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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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4일 목록에서 두 명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 순교자에 대해 기록하였다. 한 사람은 로마의 사제로 많은 이들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때인 269년에 체포되어 모진 매를 맞고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플라미니아 거리(Via Flaminia)에 묻혔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테르니(Terni)의 주교로 신앙 때문에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나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그 지방 총독인 플라키두스의 명으로 밤에 감옥에서 끌려 나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고 그의 유해는 나중에 테르니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5세기경에 기록된 “성 히에로니무스의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명의 순교자가 실제로 현존했는지는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두 명의 성 발렌티누스 순교자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테르니의 성 발렌티누스 주교가 로마로 이송되어 처형되었고, 그로 인해 로마와 테르니에 두 개의 전통이 생겼을 뿐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보고 있다. 본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 등에 따르면, 교황 율리우스 1세(336~356 재위)가 로마 근처 성 발렌티누스 순교자의 무덤 위에 성당을 건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역시 2월 14일 목록에서 로마의 밀비오(Milvio) 다리 근처 플라미니아 거리에서 성 발렌티누스의 순교가 있었다고 한 명에 대한 기록만 간단히 전하고 있는데, 그가 사제인지 주교인지 그 신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세의 대표적 성인전인 “황금 전설”(Legenda aurea / Legenda sanctorum) 등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금혼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많은 젊은이가 결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평소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던 성 발렌티누스는 비밀리에 연인들의 결혼식을 주례하다가 체포되어 황제에게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 앞에서도 당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며 오히려 황제의 개종을 권유하기도 했다.

   결국 성 발렌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아스테리우스(Asterius)라는 로마의 재판관에게 넘겨졌다. 그는 아스테리우스 재판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수님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재판관은 성 발렌티누스를 시험하기 위해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수양딸을 데려와 만약 그녀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성 발렌티누스가 그녀의 눈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아스테리우스의 딸은 기적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감동한 재판관은 성 발렌티누스의 말대로 집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3일간 금식한 후 온 가족과 함께 세례성사를 받고 개종하였다. 그리고 이미 체포되어 있던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퍼져나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성 발렌티누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대략 14세기부터이다. 연인들을 위해 몰래 결혼식을 주례한 성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은 연인들의 축일이 되었다. 이날 연인들은 서로에게 특별한 형태의 카드나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날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로는 이 시기가 새들이 짝짓기 하는 기간의 시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남성의 여성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 풍습으로 보기도 한다. 즉, 이 전통에 따르면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젊은 여인들이 ‘발렌틴’(Valentin), 이른바 자신을 흠모해 시중을 들 기사를 선택하면 그 기사가 젊은 여인에게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2월 14일을 ‘연인의 날’ 또는 ‘발렌타인데이’로 부르며 주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지내는 것은 일부 상인들의 상업적 마케팅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성 발렌티누스 순교자의 삶이나 신앙과는 거리가 먼 풍습이다.

 

<출처: 가톨릭 굿뉴스 성인목록>

 

 

테르니의 발렌티노 또는 로마의 발렌티노는 3세기에 살았던 사제이자 주교였으며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습니다. 495년 교황 젤라시우스 1세는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거행되는 루페르칼리아의 이교도 축일을 폐지하고 발렌타인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거룩한 순교자의 날인 2월 14일 축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Lupercalia는 고대 로마에서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팔라티노 언덕 기슭에 있는 Lupercal이라는 동굴 근처에서 고대 로마의 사제가 숲과 가축의 신인 파우누스를 기리기 위해 여는 연례 축제입니다.

 

성 발렌타인의 궁중 축제와 관련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관습의 첫 흔적은 14세기 영국에서 2월 14일에 카드와 사랑의 메모를 교환하는 관습이 생겨난 것입니다. 1496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성인에게 "연인들의 후원자"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연인들의 수호성인

 

전설에 따르면, 기독교가 시작될 무렵 유럽 전체가 아직 개종하지 않았을 때, 기독교인을 싫어하고 결혼을 금지하여 더 많은 남성을 전쟁에 보내려고 했던 고트족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기독교인의 결혼을 도와주는 발렌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황제는 발렌티누스를 체포합니다. 

 

발렌티누스는 배교를 강요하는 황제의 뜻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발렌티누스는 줄리아라는 이름의 소경으로 태어난 간수의 딸을 만납니다. 발렌티누스는 감옥에 있는 동안 실명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Julia와 낭만적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발렌티누스에 대한 사랑으로 Julia는 전통에 따라 기적이 일어나는 날 저녁까지 음식을 가져옵니다. 일부 목격자들은 줄리아가 시력을 되찾고 "이제 알겠어! 나는 당신이 나에게 묘사한 대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동안 감방 창문을 통해 밝고 강한 빛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기적은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를 좋아하지 않는 고딕 클라우디우스 2 세의 귀에 들어가고 황제는 즉시 발렌틴의 처형을 명령합니다. 269년 2월 14일 플라미니아 가도(Flaminia Way)에서 로마 군단병들에게 구타당하고 참수당했습니다. 

 

Julia의 온 가족이 발렌티누스를 기리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Julia는 발렌티누스의 무덤 근처에 아몬드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아몬드 나무는 그 이후로 사랑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후대

 

494년 교황 젤라시우스 1세는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금지했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1세는 7세기에 성인이 묻힌 플라미니아 가도에 성인을 기리는 교회를 세웠고, 유해는 13세기에 산타 프라세데 교회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

 

10세기에 성 발렌타인의 머리가 이탈리아에서 성 미셸 드 쿡사(Pyrénées-Orientales) 수도원으로 옮겨졌습니다. 15세기에 유물을 보관하는 흉상에 안치되었다가,  프랑스혁명 동안 Saint-Pierre de Prades 교회로 옮겨져서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오해로 인한 또 다른 이유로 발렌타인 데이는 독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발렌틴(Valentin)이라는 이름과 독일어 동사 fallen(to fall)의 음향적 유사성은 성자가 넘어져서 심하게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명성을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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