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다스투스(Vedastus, 또는 베다스토)는 4세기 중엽 프랑스 남서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프랑스 북동부 툴(Toul) 교구로 가서 세상을 멀리하며 은둔 생활을 하던 중 그곳 주교의 눈에 띄어 사제품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갈리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클로비스 1세(Clovis I) 왕이 알라마니(Alamanni)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생하다가 그의 아내인 성녀 클로틸다(Clotildis, 6월 3일)가 믿는 하느님이 자기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면 그 하느님을 믿겠다고 서약한 바 있었다. 496년 톨비악(Tolbiac)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클로비스 왕은 랭스(Reims)로 가서 세례를 받고자 했고, 툴에서 자신과 함께 여행하며 세례 준비를 도와줄 사람을 찾던 중 성 베다스투스가 선발되었다.
한 전승에 따르면 그들이 랭스로 가던 중 엔(Aisne) 강을 건너게 되었고, 그때 다리 위에서 자기 눈을 낫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한 눈먼 거지를 만나게 되었다. 성 베다스투스는 하느님께 기도한 후 그의 눈 위에 십자가를 그어 축복했는데, 그 즉시 시력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기적은 왕의 신앙을 더욱 굳게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프랑스 사람들을 개종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인도로 랭스에 도착한 클로비스 왕은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월 13일) 주교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프랑크족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서방 교회의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성 베다스투스는 성 레미기우스 주교를 돕다가 그로부터 폐허가 된 도시인 아라스의 주교로 축성되어 파견되었다. 아라스에 도착한 그는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고, 40년 동안 이교도 지역인 아라스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다가 선종하였다. 바아스트(Vaast)로도 불리는 그는 눈병을 앓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가톨릭 굿뉴스 성인목록(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list.asp?menugubun=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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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와 피카르드(Picard)의 성 바아스트(Saint Vaast), 또는 피카르드(Picard)와 왈롱(Walloon)의 성 바(Saint Waast([sɛ̃ vɑ]로 발음)는 프랑크 갈리아 지역의 주교였습니다. 성인은 아라스(Arras) 교구의 첫 번째 주교이자 수호성인입니다. 그의 축일은 2월 6일이다.
일대기
6세기에 쓰인 성인의 전기에 따르면, 성 베다스토는 페리고르(Périgord)와 리무쟁(Limousin)의 경계에 있는 살뤼(Châlus, 중세 초기의 Castrum (Leucus) 일 수도 있는 레퀴스(Leucus)라는 곳 출신이라고 합니다.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그는 페리고르(Périgord) 또는 샤르트르(Châtres, Branquelion이라는 곳), 생피에르드프뤼기(Saint-Pierre-de-Frugie), 트레몰라(Trémolat) 등 많은 곳이 출생지로 말해집니다.
그는 현재의 로렌 지방에 있는 강력한 주교 공국인 툴로 은거했다가 그곳에서 사제로 성임 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496년 톨비악에서 승리한 이교도 왕 클로비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프랑크 왕의 개종은 성 레미기우스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졌으며(세례식 동안 베다스투스가 왕관을 들고 있었다고 전해짐), 완의 수행 전사들 또한 모두 개종했습니다.
왕의 추천을 받은 베다스투스는 레미기우스로부터 아라스와(Arras, 499년)와 캉브레(Cambrai, 510) 지역의 주교단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 지역을 황폐화시킨 아틸라의 침공 이후 그곳에서 다시 세력을 회복한 이교도의 개종에 힘썼습니다.
성인은 540년에 죽었고 아라스 대성당에 묻혔습니다. 야코부스의 황금 전설(Golden Legend)에 따르면 그의 집으로 내려오는 불기둥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고 합니다.
사후
성인의 공경은 플랑드르에서 발전했고 매우 빠르게 인기를 얻어 중세 초기 내내 그렇게 유지되었습니다. 유명한 Saint-Vaast 수도원은 성인을 기념하여 Arras에 지어졌으며 시신은 667년에 그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수도원 화재 후 유해는 1227년 Arras 대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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