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랭의 성모
보랭의 성모님(Notre-Dame de Beauraing) 또는 황금 심장을 가진 성모님(Notre-Dame au coeur d'Or)은 보랭 마을의 5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아이들은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까지 33번이나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습니다. 발현 장소는 오늘날 성지이자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1943년에 예배가 승인되었고 1949년에 교황청이 공식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두 명의 자매인 앙드레 드쟝브르(당시 14세)와 질베르트 드쟝브르(9세), 그리고 또 다른 형제자매인 페르낭 브와장(15세), 질베르트 브와장(13세), 알베르 브와장(11세)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벨기에 남부에서 가난하고 작은 규모의 마을인 보랭에 모여들었고,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례가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보랭 성모 발현의 배경과 메시지
보랭은 프랑스와 8km 정도 떨어져 있고 불어를 사용하는 남쪽 베르기왈륜 지역의 인구 2000명가량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당시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했고 경제적 곤궁 때문에 자포자기한 상태로 주민의 반 이상이 공산주의에 현혹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선거에서 공공연하게 교회를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승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1932년 1월 29일 화요일 첫 발현
1932년 11월 29일 화요일 저녁 페르낭 알베르 부와장은 앙드레와 작은 질베르트와 함께 수업을 끝낸 질베르트 부와장을 데리러 수녀원 학교로 갔다.
수녀원에서 큰 질베르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베르가 소리를 쳤다.
"애들아, 저것 좀 봐, 복되신 동정녀가 저 다리 위에 걷고 있어."
나머지 아이들도 그쪽을 쳐다보았는데 순백색의 긴 부인복을 이은 한 부인의 모습"이 수녀원 건너 철길 위에 보였다.
수녀원을 나온 큰 질베르토 또한 그 모습을 보았다. 어린이들은 너무나 놀라 허겁지겁 집으로 도망을 쳤다.
1932년 12월 2일 금요일 발현
다음 날 아이들은 또 수녀원 학교에 갔다가 다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게 되었다.
성모님의 눈은 아름다운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무겁게 주름이 잡힌 길게 흘러내린 하얀 옷을 입고 계셨다.
팔에는 로사리오가 걸쳐 있었고 손은 기도하는 것처럼 합장하고 있었다.
알베르가 "당신은 티 없이 깨끗하시며 원죄 없으신 성모님이십니까?"하고 물어보았다.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베르는 다시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성모님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을 하셨다.
"항상 착한 사람이 되어라."
잠시 후 성모님은 당신 팔을 치시고 마치 어린이들을 따뜻이 안아 주시듯 하셨다. 그러고 나서 사라지셨다.
1932년 12월 8일 목요일
2월 8일은 지정된 날이어서 평상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15,000명가량이었다.
어린이들도 부모님들을 모시고 저녁 6시 10분경에 왔다. 의사들과 심리학자들도 많이 참석했다.
아이들은 정원문에 도착하자마자 발현을 목격했고 탈혼 상태에 빠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질문과 시험을 했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꼬집기도 하고 살짝 때리기도 하며 바늘로 찔러보기도 했다.
어떤 의사는 큰 질베르트의 왼손 밑으로 성냥불을 대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사들이 아이들을 시험하는 동안 군중들은 로사리오 기도를 바쳤는데 마지막 단을 바치고 나자 성모님은 사라지셨다.
1932년 12월 나머지 발현
12월 17일 토요일 성모님은 당신이 발현했던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오도록" 성당을 지으라고 부탁을 하셨다.
또 나흘 후인 21일 수요일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이다."
며칠 후 동정녀는 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곧 나는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날 것이다. "
12월 29일 목요일 복되신 동정녀는 전에 작별하던 자세로 당신의 두 팔을 펼치셨는데 그때에 빛줄기가 주위로 번쩍이는 당신의 황금빛 심장을 보여 주셨다.
다음 날인 12월 30일 금요일 성모님은 " 기도하라,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빛나는 심장을 보여 주셨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성모님은 세 번째로 당신의 성심을 드러내셨다.
1933년 1월 마지막 발현
1933년 1월 1일 일요일 성모님은 큰 질베르트에게 "항상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당신의 마지막 발현은 이틀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933년 1월 2일 월요일에 성모님은 "나는 매일 너희들 각자에게 따로따로 이야기해 주겠다."라고 하셨다.
1933년 1월 3일 화요일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일에는 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왔다.
성모님은 약속대로 어린이들 각자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앙드레에게는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하늘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큰 질베르트에게는 위대한 약속을 하셨다.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잘 있어!"하고 말씀하셨다.
알베르와 작은 질베르트 두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히 " 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이 끝났을 때 페르낭 성모님을 못 보았기 때문에 너무나 충격을 받고 슬퍼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뭐가 부딪히는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나무에 둥그런 불덩어리가 보였다.
그리고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전처럼 작별의 표시로 팔을 벌리셨다.
그리고 페르난드에게 당신 성심을 보여주시며 "잘 있어"하고 말씀하셨다.
이 성지의 첫 번째 예배당은 Namur의 주교인 Mgr Charue가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직전인 1947년에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예배당은 1954년에 축성되었습니다. 다음 해에 다른 예배 장소(지하실, 상층 교회)가 건설되었고, 부지는 점차적으로 개발되었으며, 순례자를 수용하고 수용하기 위해 성역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인근 건물을 구입했습니다.
벨기에 사목 방문(1985)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순례자로 성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2013년에 성소 교회는 교황청에 의해 소바실리카로 승격되었습니다.
성지 입구에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안내소 건물이 있습니다.
보랭 성지
안내소 맞은 편의 광장 입구에는 모든 것이 돌로 만들어졌고 창문의 수, 개구부 등이 성모 발현과 관련된 상징으로 가득 찬 봉헌 예배당이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건축가 Claes de Beauraing가 1947년에 지었습니다. 본관은 순례자들과 병자들을 접대(숙소와 식사)하는 예전의 수녀원 학교가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1932년에서 1933년 사이의 겨울 동안 다섯 어린이의 환상을 상기시키는 명판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있는 5개의 창문은 다섯 아이를 상징한다. 세 개의 창이 난 기둥은 성부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삼위일체 기둥이라고 한다. 경당 입구의 문은 왼쪽에서 다섯 단계의 아치로 시작해서 오른쪽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다섯 아이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상징이라고 한다.
발현 기념 예배당 뒤로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정원이 있다. 정원에서 보면 길 건너로 철길이 보인다.
보랭 성지 바실리카
가장 최근에 지어진 2층 바실리카는 2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이다. 성당의 큰 규모에 비해서 무척 소박하고 벽면에 만들어진 십자가의 길 조각을 제외하면 아무런 장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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