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10세기경부터 동방 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 오던 성인 중 한 명이지만 그녀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6세기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us I)가 시나이산기슭 성녀 카타리나의 무덤 위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기념 정교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
리스계 수도승들이 생활하고 있는 이 수도원을 통해 그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성녀 카타리나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상류 계층의 부유한 로마인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 뛰어난 학식을 지닌 미모의 처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날 한 은수자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해 듣고 그것이 세상의 학문을 초월한 참된 진리임을 깨달아 즉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황금 전설”에 따르면, 성녀 카타리나는 공주 신분으로 철학, 수사학, 문법 등을 교육받은 지혜로운 처녀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황제 막센티우스(Maxentius)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황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잔인한 박해를 시작했다. 3년간 계속된 혹독한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했다. 미모의 젊은 처녀였던 성녀 카타리나는 우상에게 희생제물 바칠 것을 강요받았지만, 당당히 미신을 버리고 창조주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황제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체포된 성녀 카타리나는 황제 앞으로 끌려가 직접 재판을 받게 되었다. 황제는 그녀의 박식함에 놀라 여러 철학자를 소집해 그녀와 토론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녀의 깊은 학식과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답변과 날카로운 질문에 학자들의 말문이 모두 막혀버렸고, 논쟁 끝에 오히려 50여 명의 이방인 철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인정하고 개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극도로 분노한 황제는 소집된 학자들을 모두 화형에 처해버렸다.
성녀 카타리나가 배교할 의향만 있으면 자신과 결혼시켜 주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해주겠다는 황제의 유혹과 회유마저 단호히 거부하고 심한 매를 맞은 뒤에 투옥되었다. 그 어떤 고문에도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황제는 그녀를 감옥에 가두고 음식조차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독방에 갇혀 있는 동안 비둘기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었고, 성모님과 함께 아기 예수님이 발현하시어 성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다른 도시를 방문하고 돌아온 황제는 성녀 카타리나가 굶어 죽지도 않고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고 잔인한 사형 도구인 쇠갈퀴가 달린 바퀴를 이용해 죽이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바퀴가 제때 움직이지 않고 천사가 내려와 산산조각 내는 바람에 많은 군인과 구경꾼들이 그 파편에 맞아 죽었고, 성녀 카타리나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녀의 굳은 신앙과 인내심은 수많은 군인을 놀라게 했고, 그로 인해 2백여 명의 군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곧바로 참수를 당해 순교했다.
결국 그녀는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그때 그녀의 목에서 피가 아닌 우유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순교 후 그녀의 시신은 천사에 의해 시나이산 가장 높은 곳으로 옮겨졌고, 6세기에 그곳에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오늘날까지도 이 수도원은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고, 많은 순례자가 찾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성녀 잔 다르크(Jeanne d'Arc, 5월 30일)가 들은 신비한 목소리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철학자, 동정녀, 설교가의 수호성인이다. 교회 미술에서 그녀는 왕족을 상징하는 화려한 옷에 왕관을 쓰고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이나 칼, 순교 도구였던 쇠갈퀴가 달린 바퀴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성모자와 함께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혼인을 상징하는 반지를 받는 모습으로도 많이 표현되고 있다.♧ <출처: 가톨릭 굿뉴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그리스어: Αγία Αικατερίνη της Αλεξάνδρειας, 287년 - 305년)는 4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동정녀 순교자이자 그리스 정교회의 6대 성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서 막시민 2세 다이아의 통치 기간인 312년 1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기독교의 성인으로서, 축일은 11월 25일이다. 카타리나는 ‘순수’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녀와 관련한 전설과 숭배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퍼져 나갔고 십자군 전쟁 이후 널리 퍼졌습니다. 그녀는 여학교와 철학과의 후원자로, 종종 피로 물든 반쯤 부서진 바퀴에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회화에서는 주로 호화로운 옷을 입고 책을 읽는 젊은 공주로 묘사된다. 상징물은 못이 박힌 바퀴·칼·신비의 결혼반지이며, 연설자·철학자·공증인·재봉사·모자 제조자·실 잣는 사람·짐마차 제조자·보모·유모의 수호 성녀이다.
그러나 성 카타리나의 존재를 입증할 역사적 증거는 부족합니다. 여러 현대 역사가 는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로 간주하고 그녀가 신플라톤 철학자 Hypatia (355-415)의 전기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황금 전설》에 따르면, 카타리나는 젊고 아리따운 그리스도인으로 코스투스 왕의 외동딸이었으며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로마 황제 막센티우스와 대립했다. 그녀를 설득하여 로마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하는 데 실패한 막센티우스는 현자들을 보내 그녀를 회유하도록 했다. 50명의 철학자들과 웅변가들이 그녀를 찾아가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갖은 감언이설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단념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되려 카타리나는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여 오히려 그들을 기독교야말로 진리임을 인정시켜 개종하도록 만들었다. 이 일로 황제는 크게 분노하여 개종한 현자들을 모두 화형에 처해 버렸다. 그리고 카타리나는 굶어 죽도록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후 12일 동안 그리스도가 카타리나에게 비둘기를 보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막센티우스는 카타리나에게 사형을 언도하여 많은 못이 박힌 바퀴를 돌리면서 그녀의 몸을 잘라 죽이려고 했으나 그녀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자 천사가 하늘에서 검을 들고 내려와 카타리나의 몸을 갈가리 찢으려던 바퀴를 부숴 버려서 목숨을 부지했다. 부서진 바퀴의 파편들은 몰려오던 구경꾼들에게 날아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결국 카타리나는 참수되었으며 참수된 목에서는 피 대신 우유가 흘러나왔다.
카타리나의 시신은 나중에 천사가 회수하여 하얀 수의에 감긴 채 시나이 산으로 운구되었다고 합니다. 몇 세기 후, 시나이 산기슭에 지어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근처 산 꼭대기에서 천사들에 의해 그곳에 옮겨진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로 알려진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온전한 시신을 기적적으로 발견합니다. 시나이에 있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성묘의 수호자가 됩니다.
가타리나의 전설이 서방 전역으로 퍼져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헌신의 모티브를 만든 것은 십자군 전쟁 동안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삼색 후광으로 성자를 표현했습니다. 순결은 흰색, 지식은 녹색, 순교는 빨간색입니다. 그녀를 고문한 바퀴는 자주 그녀의 근처에 나타납니다. 또한, 그녀는 잔 다르크에게 충고를 하던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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