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Andreas, 그리스어로 안드레아스)는 갈릴리 출신의 유대인으로 성 베드로의 형제이자 사도들 중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가 요르단 강둑에서 세례를 받은 직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부름은 그의 형제 시몬(사도 베드로)과 함께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진 순간 예수님이 다시 불렀을 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 전승은 그에게 처음 부르심 받은 사람이란 뜻의 ‘프로토콜레토스’(Protokletos)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있는 갈릴리 벳사이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형 시몬과 함께 어부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던 그는 먼저 그에게 세례를 준 설교자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이시다."(요 1:29-40)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를 따랐고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최초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종종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특히 그의 형제 시몬을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 그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 소년을 데려왔습니다. 몇몇 그리스인들이 예수를 만나려고 했을 때, 그는 예수에게 말을 전했다.
전승에 따르면, 오순절 이후 흑해 연안을 일주하는 긴 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비티니아(아나톨리아 해안), 에베소, 해양 트라키아(보스포루스 해협과 칼리아크라 곶 사이 지역), 소 스키티아(토미스에서 다뉴브 강 하구까지), 크리미아, 비잔티움, 마지막으로 아카이아(북부 지역)까지 이르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60년 11월 30일에 파트라이에서 네로 황제 치하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로마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거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중에서 선택하라고 명령한 에게해 총독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그의 유물은 4세기에 파트라이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지고, 다시 15세기에 로마의 성 베드로 성전에 안치되었습니다. 사도의 유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조각, 베로니카의 휘장, 롱기누스의 창과 함께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4대 유물 중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이후 1960-1970년 사이에 성자와 그의 십자가 유물 상당 부분이 그리스 교회로 반환되었습니다.
두 개의 다른 유물은 에든버러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성 안드레아의 유물함과 마스트리흐트의 성 세르바티우스 대성당에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의 뼈가 있는 유물함에 있습니다. 성 안드레아의 주요 상징은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불리는 같은 길이를 가진 십자가로 파트라스 대성당에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그를 키예프(도시는 5세기 후에 설립됨)의 첫 번째 복음 전파자로 여기며 오늘날 러시아는 표트르 1세의 통치 기간인 1690년 이후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를 전함의 깃발로 사용합니다. 성 안드레아는 현재 루마니아가 있는 지역의 첫 번째 복음 전파자로 간주되며 루마니아 정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성인 중 한 명으로 기념합니다. 또한, 성 안드레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여러 프리메이슨 지회, 수많은 술집과 교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골프 코스 중 하나가 있는 도시와 대학이 그의 이름을 땄습니다.
1964년 주현절에 예루살렘에서 순례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 동안 교황 바오로 6세와 총 대주교 아테나고라스는 화해의 표시로 서로 입맞춤을 했습니다. Athenagoras는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포옹하는 것을 그린 이콘을 선물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입맞춤은 동방과 서방 자매 교회의 일치를 향한 행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도들 중 "최고"라면 안드레는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한 명은 로마 교회(서방 교회)의 창시자로 간주되고 다른 한 명은 콘스탄티노플 교회(동방 교회)의 창시자로 간주됩니다. <위키백과>
요한의 아들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동생인 사도 성 안드레아(Andreas)는 마르코 복음에 의하면 갈릴래아 카파르나움 출신이고(1,21-31), 요한복음에 따르면 갈릴래아 벳사이다 출신으로(요한 1,44) 형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카파르나움과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이웃 마을들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 형제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라며 그들을 첫 제자로 부르셨다. 이 말씀에 그들은 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요한복음은 성 안드레아를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요한 세례자는 두 제자와 함께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이시다.”라고 말했고, 두 제자는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와서 보아라.”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그분과 함께 묵은 후 집으로 돌아온 성 안드레아는 즉시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며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그가 앞으로 케파, 즉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라 말씀하셨다(요한 1,35-42). 이에 근거해서 초대교회는 성 안드레아를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란 뜻의 ‘프로토콜레토스’(Protokletos)라고 불렀다. 이렇듯 성 안드레아는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 바로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이자 가장 먼저 주님의 복음을 전한 사도가 되었다.
‘남자다운’, ‘용감한’이란 뜻을 가진 이름의 성 안드레아는 복음서에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실 때 그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며 오병이어를 가진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해 갔다(요한 6,1-15). 또 축제 때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온 이들 중 이방인인 몇몇 그리스 사람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하자 성 필립보와 함께 예수님께 말씀을 전해드렸다(요한 12,20-22). 성 안드레아는 복음 안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그 외에 올리브 산에서 예수님께 종말에 관해 물어본 네 명의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마르 13,3-4).
전승에 따르면 성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흑해 서부 스키티아(Scythia) 지방과 그리스 지방으로 가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불가리아 지방까지 가서 선교했다고 한다.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성 안드레아는 비잔티움(Byzantium,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서 성 스타키스(Stachis, 10월 31일)를 그곳의 초대 주교로 임명했다고 한다. 이들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가 널리 전파된 지역으로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좌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했는지는 불확실하나 가장 오래된 초기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60년 11월 30일 네로 황제 치세 때 아카이아(Achaia, 그리스 서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 지역)의 파트라이(Patrai)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4세기경의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하나, 중세 말에 덧붙여진 이야기로는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는 보통 성화나 성상에서 X자형 십자가와 함께 나온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서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에 가서 전교하다가 파트라이에서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하며, 죽음 앞에서 성 안드레아가 바친 기도를 전해주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내가 뵈었고 내가 사랑했던 당신, 당신 안에 있는 나를 받으소서. 당신의 영원한 나라에 내 영혼을 받으소서. 아멘.”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에 대해서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순교 장소인 그리스의 파트라이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가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이로 보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러시아, 스코틀랜드 등 여러 국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러시아까지 가서 설교했다는 미확인 전승에 따라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아 왔고, 4세기경 그의 유해 일부가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는 전승에 따라 그곳에서도 특별한 공경을 받았다. 이는 성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 관리자였던 성 레굴루스(Regulus, 3월 30일)가 꿈에서 지시받은 일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성 레굴루스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 안드레아가 부르는 곳으로 갔고, 30여 년 동안 그 지역에서 스코틀랜드 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832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앵거스 2세(Oengus II)는 픽트족과 함께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성 안드레아에게 기도하며 자신이 승리하면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전투 당일 하늘에 X자 모양의 구름이 뜨고 스코틀랜드 군대는 승리를 얻었다. 그 후 스코틀랜드 인들은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성 안드레아의 상징인 X자 모양의 십자가를 넣은 깃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를 스코틀랜드의 공식 국기로 확정했다.♧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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