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1세기의 유대인으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은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 형제 대 야고보와 함께 12 사도 중 첫 번째로 언급되는 이름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세 개의 서신과 묵시록(저자는 파트모스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것으로 자신을 표현함)을 썼다고 합니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제베대오의 아들
세 개의 공관 복음서에서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은 그의 형제 대 야고보와 함께 열두 사도 목록의 맨 위에 나타납니다(마르 3,16-19, 마태 10,2-5 및 루카 5,1-11). 그들은 디베랴 호수("갈릴리 바다" 또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함)의 어부들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와 같이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마르 1,16-20, 마태 4,18 - 22, 루카 5,1-11).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 요한은 거룩한 변모가 있을 때 산에서 예수님과 같이 있었습니다(마르 9,2, 마태 17,1, 루카 9,28).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도 시몬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칠 때(마르 1,29), 회당장 야이로 딸의 병을 고칠 때(마르 5,37, 루카 8,5) 예수님과 동행한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누군가를 막으려는 제자들을 대신하여 개입합니다(마르 9,38, 루카 9,49).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의 권유로 예수께서 "영광을 받을 때" 예수 옆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제자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마르 10,35-45).
올리브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잠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안타까워하십니다(마르 14.33).
사도 요한의 기적
많은 기적이 사도 요한을 통해 일어납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황금 전설에 따르면, 아리스토데모와 에베소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보다 기독교가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독을 마시라는 명령을 받은 요한은 그 잔을 마시고도 무사했으며. 독의 효과를 시험하려고 마시고 죽은 두 사형수를 살려냈습니다.
사도 요한의 죽음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설교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가서 팔레스타인 도시에 교회를 조직하는 데 큰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 뒤로 로마의 탄압을 피해 팔레스타인을 떠나 에베소로 피신하여 기적을 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모님은 에베소에서 요한과 함께 살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94년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있은 후 요한이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묵시록을 썼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는 입에 "말씀"의 검을 물고 흰 옷을 입은 장엄한 묵시록의 그리스도의 환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서기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죽은 후, 네르바 황제는 요한이 에베소로 돌아가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지역 기독교 공동체의 초청을 받아 "때로는 주교를 세우기 위해, 때로는 완전한 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성령에 의해 임명된 사람 중 한 사람을 성직자로 선택하기 위해" 지역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현재 폐허가 된 성 요한 대성당이 있던 에베소 근처의 셀추크에 묻혔습니다. 사도는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의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또는 폴리카르포)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논쟁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제베대오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가 순교자로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부 필사본에는 성 야고보의 순교로 확인된 것과 관련해서 요한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리아 순교서, 갈리칸 전례서, 아일랜드 성사집과 같은 훨씬 이후의 문서들은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43년 또는 그 직후 사망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술적 표현
Tetramorph 전통에서 전도자로서의 그의 상징은 독수리이므로 "Patmos의 독수리"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이 속성은 에스겔의 환상과 묵시록을 쓴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독수리가 책상이 되어 도왔다는 기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많은 표현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더 잘 듣기 위해 때때로 눈을 감고 예수님 옆에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요한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복음서에서 요한은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매우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대한 많은 묘사에서 요한은 십자가 아래에 마리아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에 대한 여러 묘사는 뱀의 머리가 나오거나 독이 작은 용의 형태로 빠져나가는 성배 또는 독이 든 컵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도요한과 복음사가 요한
기독교 전승은 복음사가 요한과 "예수가 사랑한 제자"를 같은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180년경, 사도 요한을 본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스를 자주 방문했던 리용의 이레네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 이어 주님의 제자 요한도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전도자가 제베대오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단독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종종 "요한 학파"라고 불리는 공동체의 작품"이라는 데 거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s://fr.wikipedia.org/wiki/Jean_(ap%C3%B4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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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annes)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성 대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동생이다. 성 야고보와 성 요한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아버지와 삯꾼들을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11). 이들 형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흥분을 잘했기 때문에(루카 9,54; 마르 10,35-41),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마르 3,17).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중요한 행적,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을 때(마르 5,37; 루카 8,5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마태 17,1; 마르 9,2; 루카 9,28), 겟세마니(Gethsemane)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7; 마르 14,33)와 같은 중요한 순간에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와 함께 예수님 곁에 있었다. 또 성경 곳곳에서 성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되고 최후의 만찬 때 스승의 가슴에 기댔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예수님 곁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직접 당신 어머니를 맡기셨다(요한 19,25-27).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안식일 다음 날,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이 비었다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의 말을 듣고 성 베드로와 함께 달려갔는데, 성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다다랐다(요한 20,1-5). 그는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었고,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성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1,1-7).
사도행전에서도 성 요한은 성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다가(사도 3장), 백성의 지도자들에 의해 성 베드로와 함께 투옥되고 최고 의회에서 당당히 증언하기도 했다(사도 4,1-22).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을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성 베드로와 함께 파견되어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고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8,14-15.25).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는 성 야고보와 케파(성 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 2,9). 후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Patmos)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고(묵시 1,9),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후 에페수스(Ephesus)로 돌아와 여생을 지내다가 100년경에 선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성 요한은 너무 나이가 많아 군중들에게 설교할 수 없었고, 다만 간단한 말만 했다고 한다.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요한의 무덤으로 알려진 자리에 ‘사도 요한 성당’을 건립하였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신약성경의 네 번째 복음서(요한복음)와 세 권의 서간(요한 1·2·3서) 그리고 요한 묵시록이 사도 성 요한의 저작물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요한은 주로 책(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한 그의 상징과 문장으로 독수리가 사용되는데, 이는 요한 복음서의 신학이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높고 깊은 경지에서 우리를 참된 신앙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 미술에서 성 요한은 독수리 외에도 뱀이 든 성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자주 표현된다. 이는 “황금 전설” 등을 통해 전해진 전설에 따른 것으로, 성 요한이 독이 든 잔을 받고 축복하자 그 독이 뱀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던 성 요한은 그의 복음서와 서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며, 특별히 모든 이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것을 강조한 ‘사랑의 사도’였다.♧
<출처: 가톨릭 굿뉴스(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today=&today_tmp=&ctxtCommand=&ctxtLogOn=&ctxtSexcode=&ctxtChukday=&ctxtGaladay=&Orggubun=101&ctxtHigh=&ctxtLow=&ctxtChecked=Checked&oldrow=&curpage=1&ctxtOrder=name1%2Cgaladaym%2Cgaladayd&ctxtOrderType=&ctxtSaintId=2054&ctxtSCode=&ctxtSearchNm=&ctxtChukmm=12&ctxtChukdd=27&ctxtPosition=&ctxtCity=&PSIZ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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