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와 신화의 성지 몽생트오딜
신자이든 아니든, 순례자, 자연 애호가, 등산객, 역사 및 고고학 애호가 등 많은 사람이 여러 이유로 몽 생트오딜 성지(Mont Sainte-Odile, 오틸리아)를 방문합니다. 해발 753미터에 달하는 이 보주 정상은 알자스 평야를 내려다보는 장엄한 호엔부르 수도원의 배경 역할을 합니다.
알자스에는 평원과 스트라스부르, 뮐루즈, 콜마르의 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보석 중 하나인 몽생트오딜(Mont Sainte-Odile)이 보쥬(Vosges) 대산괴의 일부를 차지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독일 흑림의 능선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Mont Saint-Michel보다 관광객이 훨씬 적은 Mont Sainte-Odile에는 주민이 6명(2명의 사제와 4명의 수녀)뿐입니다. 수녀원의 동쪽 정면에는 1923년에 세워진 거의 4미터 높이의 성 오딜의 큰 동상이 있는 분홍색 사암 포탑이 있습니다. 베네딕트회 예복을 입은 성녀는 축복의 표시로 알자스 평야를 향해 오른팔을 뻗고 있습니다. 다른 손에는 성녀가 치료받은 실명을 상징하는 눈이 그려져 있는 성 베네딕트의 규칙서와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Mont Sainte-Odile 정상의 바위 노두에 독수리 둥지처럼 자리 잡은 Hohenbourg Abbey는 분홍색 사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영적이며 활기찬 곳입니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이 성소에는 17세기 바실리카, 4개의 예배당, 호텔 및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1730년에 지어진 이 아치형 통로를 지나서 넓은 안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입구에 쓴 '와서 보라'라는 요한 복음서 1장 9절은 시력을 되찾고 기적적인 치료를 바라는 눈먼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성녀 오틸리아(Sainte-Odile)에게 잘 어울립니다.
안뜰의 나무에는 1988년 10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습니다. 교황의 유물도 Sainte-Odile의 무덤 예배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720년, 생트 오딜(Sainte-Odile)은 이곳에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창조물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며 살기 위한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성녀 오틸리아의 전설
알자스 공작 아달릭(또는 에티콘)이 아들을 바라며 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때에, 연약하고 눈먼 소녀가 태어납니다. 분노한 그는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분노한 그는 그녀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녀의 간호사에 의해 비밀리에 구조되고 자란 아이는 12살 때 세례를 받는 동안 신부가 성유로 그녀의 눈을 만졌을 때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아이는 문자 그대로 "빛의 딸"또는 "신의 빛"을 의미하는 Odile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회개한 아버지는 딸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Mont Saint-Odile의 현재 성역이 된 Hohenbourg 성을 주었고 그녀는 수도원으로 변모시켰습니다. 혁명과 함께 수도사들은 쫓겨났고, 수도원은 더럽혀지고 팔려서 거의 60년 동안 버려졌습니다. 1853년이 되어서야 성소는 스트라스부르 주교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Sainte-Odile의 시신은 Sainte-Odile 예배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Saint-Jean-Baptiste 예배당에 있는 석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수세기 동안 눈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순례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4세(Charles IV)는 720년 Odile이 사망한 이후 처음으로 석관을 열고 그녀의 팔뚝을 꺼냈는데, 현재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도원 아래쪽으로 15분 정도 내려가면 오틸리아의 샘물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맹인과 목마른 거지를 만난 성인이 막대기로 바위를 쳐서 안과 질환을 치료할 좋은 물이 나오도록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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