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성 블라디미르 대성당 또는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우크라이나어)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입니다.
현재 예배당이 있는 자리에는 13세기에 지어졌다가 17세기 초에 자선 형제회를 위한 건물을 만들기 위해 철거된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예배 장소의 첫 번째 돌은 Marie de Médicis에 의해 1613년에 놓였습니다. 건물은 마지막에 병원이 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중에는 병원 전체가 의학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1799년부터 예배당에는 임상 학교가 설립되었고 1850년까지 국립 의학 아카데미의 소재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1937년에는 우크라이나 가톨릭 교도를 위한 선교부가 조직되어 1942년 말에 이 예배당을 우크라이나 비잔틴 예식을 위한 가톨릭 교회로 지정했습니다. 1942년에 우크라이나 공동체에 넘겨졌고, 1943년 5월 9일 파리의 보조 주교인 에마뉘엘 챕탈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988년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키예프의 루스 공의 이름을 따서 생 블라디미르 르 그랑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개요
3개 층에 빛이 들어오는 단일 본당으로 구성된 길쭉한 계획이며, 종탑은 없습니다. 거리 정면은 Doric 엔타블러처에 의해 분리된 두 개의 층으로로 나뉩니다. 첫 번째 층의 문은 윗층의 두 개의 Doric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세 개의 반원형 베이가 있습니다. 베이에는 삼각형 페디먼트가 올려져 있습니다.
대 블라디미르
러시아의 고대국가인 키예프(Kiev) 공국의 통치자 스뱌토슬라프(Svyatoslav) 대공작의 서자로 태어난 성 블라디미르는 972년 부친이 사망한 후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 끝에 키예프 지역을 차지하고 978년 키예프 대공에 올랐다. 그는 키예프를 중심으로 삼아 러시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고, 그런 과정에서 그리스 정교회를 선택하였다. 성 블라디미르는 989년에 세례를 받고 키예프의 주민들도 모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바실 2세(Basil II)의 여동생인 안나(Anna)와 결혼하였다.
그의 개종은 러시아에서 그리스도교가 탄생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개혁하고, 학교와 교회들을 세우는 한편 신전과 우상들을 파괴했으며, 그리스에서 선교사를 영입하였다. 그는 또한 로마와 대사를 교환하고, 특히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의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1015년 7월 15일 키예프 인근의 베레스토브(Berestove)에서 선종하였다. 성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가톨릭의 수호성인이다. <가톨릭 정보 -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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