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데트 순례길은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la Grotte de Massabielle)에서 바르트레(Bartrès)까지 이어지는 약 5 Km의 옛날 길을 말합니다. 성지에서 나와서 생 미셀 다리(Porte Saint-Michel)를 건너 닥터 부와사리 길(rue du Docteur Boissarie)에서 좌회전하여 GR101의 흰색과 빨간색 표시를 따라가면 식사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Bartrès 마을이 나옵니다.
바르트레는 베르나데트가 1844년 11월부터 1846년 4월까지 어린 시절의 두 번째 해를 보낸 곳입니다. 그 뒤로 1857년 13살이던 베르나데트는 다시 이곳에서 양치기를 하며 약 5개월 머물렀습니다. 이 길을 따라 매년 3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루르드와 바르트레를 오갑니다.
베르나데트가 어린 시절에 두 번 머물렀던 바르트레는 세례자 요한의 삶을 상징하는 14세기말에 지어진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성녀의 뼛조각이 박힌 성스러운 십자가와 성녀가 글씨 연습을 하던 노트 사본을 볼 수 있습니다.
베르나데트가 Bartrès에 처음 머물렀던 것은 1844년 11월부터 1846년 4월까지였습니다. 베르나데트(Bernadette)는 1844년 1월 7일 Moulin de Boly에서 태어났습니다. 같은 해 11월, 엄마인 Louise Soubirous가 더 이상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Bernarde 이모는 그녀의 조카딸과 대녀를 Bartrès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Soubirous 공장의 고객인 Marie Aravent와 Laguës가 13일 된 아이를 잃었고 Bernadette에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나데트가 Bartrès에 두 번째 머무른 것은 방앗간 사업이 쇠퇴하면서 수비리 가족에게 닥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결국 카쇼(Cachot)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베르나데트를 농장에서 일할 하인을 찾던 라구레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1857년 9월부터 1858년 1월까지 베르나데트는 바르트레에서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첫 영성체를 받기 위해 교리문답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도와주던 교구 신부인 아데르(Ader) 신부가 떠나고, 학교에도 다닐 수 없게 되자 베르나데트는 루르드의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바르트레 마을 입구에는 베르나데트를 기념하는 자그마한 경당이 있습니다. 경당 옆으로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베르나데트가 양치기 할 때 머물던 양우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양치는 용도로 쓰지 않고 베르나데트를 기념하는 조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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